용어부터 어렵죠? 발생 → 전파 → 피해 → 대책이라는 하나의 흐름과 파형 그래프로 풀었습니다. 전기를 깊이 안 배웠어도 큰 그림이 잡힙니다.
들어가며 — 고조파는 외울 게 아니라 ‘따라 읽는’ 흐름입니다
고조파 단원은 용어가 많습니다. 비선형 부하, 전류원, THD, 디레이팅, 필터… 이 개념들을 따로따로 떨어진 항목으로 외우면 양도 많고 쉽게 흩어집니다.
그런데 이 개념들은 사실 하나의 인과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고조파는 ‘전류’로 태어나, 길을 따라 흐르다가, ‘전압’으로 말썽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태어나고 (발생) → 흘러 퍼지고 (전파) → 사고를 치고 (피해) → 막아내는 (대책), 이 네 장면을 순서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이 흐름만 잡으면 나머지 세부 개념은 “이야기의 어느 장면인가”로 정리됩니다.

이제 네 장면을 하나씩 봅니다.
① 발생 — 깨끗한 물결을 ‘들쭉날쭉’하게 만드는 기기들
전기는 원래 부드러운 물결(정현파) 모양으로 흐릅니다. 선풍기나 백열등 같은 기기는 전기를 있는 그대로 매끄럽게 받아 쓰기 때문에 이 물결이 깨끗하게 유지됩니다.
그런데 요즘 기기들 — 노트북 충전기, LED 조명, 인버터 에어컨 — 은 전기를 부드럽게 받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필요한 순간에만 전기를 왈칵왈칵 끊어서 들이켭니다. 음료를 빨대로 일정하게 마시는 사람과, 벌컥벌컥 끊어 마시는 사람의 차이입니다. 이렇게 끊어 쓰는 기기를 비선형 부하라고 부릅니다.
벌컥벌컥 끊긴 이 전류 물결을 수학(푸리에 분석)으로 쪼개 보면, 여러 개의 깨끗한 물결의 합으로 나뉩니다 — 원래 박자의 물결(기본파, 60Hz) + 그 박자의 정수배로 빠른 물결들(3배=180Hz, 5배=300Hz…). 이 정수배로 끼어든 물결들이 바로 고조파입니다.

짚고 갈 성질 1 — 고조파는 ‘전류원’처럼 행동한다
비선형 부하는 주변 전기 사정이 어떻든 자기 방식대로 전류를 끊어 쓰기 때문에, 마치 주변 눈치를 안 보고 정해진 만큼만 가져가는 고집 센 손님 같습니다. 그래서 고조파는 “전압을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전류를 일정하게 밀어 넣는 존재(전류원)”로 봅니다.
짚고 갈 성질 2 — 고조파는 ‘일그러뜨리는 몫(D)’이다
전기에는 여러 종류의 ‘힘의 몫’이 섞여 있습니다. 전체 그릇을 피상전력 S라 하면, 그 안에 실제로 일하는 몫 유효전력 P, 왔다 갔다만 하는 몫 무효전력 Q, 그리고 파형을 일그러뜨리는 몫 왜형전력 D가 들어 있습니다. 이 관계는 피타고라스 정리처럼 한 식으로 묶입니다.
S² = P² + Q² + D²
(전체 그릇)² = (일하는 몫)² + (왔다 갔다 몫)² + (일그러뜨리는 몫)²
고조파가 차지하는 건 바로 이 D입니다. 고조파가 없으면 D = 0이라 익숙한 S² = P² + Q²가 되고, 고조파가 끼어드는 순간 D가 살아나 그릇 S를 키웁니다.
시험 포인트. D를 무효전력 Q와 헷갈리게 만드는 함정이 자주 나옵니다. Q는 코일·콘덴서가 만드는 위상 어긋남의 몫, D는 파형이 일그러져서 생기는 몫 — 둘은 다른 축입니다.
② 전파 — 발생은 전류인데, 피해는 전압으로 나타난다
태어난 고조파 전류는 어디로 흐를까요? 물이 낮고 넓은 길로 빠지듯, 전류도 ‘흐르기 쉬운 쪽’으로 흘러갑니다. 여기서 ‘흐르기 쉬운 정도’를 가로막는 저항감을 임피던스(쉽게 말해 전기가 흐를 때 받는 종합 저항감)라고 합니다. 보통 부하 쪽보다 전원 쪽 임피던스가 더 낮아서(길이 더 넓어서), 고조파는 부하에서 전원 방향으로(평소 전기와 반대로) 거슬러 흘러나갑니다.
그런데 이 전류가 좁은 길(임피던스)을 우르르 지나가면, 그 길의 전압이 출렁이며 일그러집니다. 말로 풀면 — 새는 전류가 많을수록, 그리고 길이 좁을수록, 전압이 더 심하게 일그러진다. 이걸 기호로 줄인 게 다음 식입니다.
Vh = Ih × Zh
일그러진 전압 = 고조파 전류 × 임피던스

고조파는 ‘전류’로 태어나지만, 정작 피해는 ‘전압’으로 나타난다.
한 지점의 전압은 거기 연결된 모든 기기가 함께 마시는 공기 같아서, 전압이 일그러지면 주변 기기 전부가 영향을 받습니다. 전력의 ‘품질’을 전압 기준으로 따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③ 피해 — 변압기, 중성선, 공진 세 곳에서 사고를 친다
전압이 일그러진 환경에서 실제로 어떤 사고가 나는지가 이 단원의 알맹이입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피해 1 — 변압기가 제 힘을 못 낸다 (디레이팅)
고조파는 변압기를 평소보다 더 뜨겁게 달굽니다. 그래서 정격 용량을 다 쓰지 못하고 살짝 깎아서 써야 합니다. 정원 100명인 식당이 시끄러운 손님(고조파) 탓에 80명만 받아야 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 영향을 숫자로 표시한 게 K-factor이고, 아예 고조파를 견디게 설계한 게 K-factor 변압기입니다.
피해 2 — 중성선에 전류가 3배로 몰린다
보통 3개의 전선에 흐르는 전기는 박자가 서로 어긋나 중성선에서 깔끔하게 상쇄됩니다. 그런데 3차 고조파는 특이하게도 세 전선에서 박자가 똑같습니다(동상).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밀면 힘이 합쳐지듯, 3차 고조파는 중성선에서 합쳐져 한 상에 흐르는 3차 성분의 3배까지 흐릅니다. (이렇게 박자가 똑같은 성분을 영상분이라고 부릅니다.)

피해 3 — 공진으로 증폭된다
계통에는 코일 성질(L)과 콘덴서 성질(C)이 섞여 있는데, 특정 주파수에서 둘이 서로를 부추기면 그 고조파가 뻥튀기처럼 커집니다. 그네를 박자 맞춰 밀면 점점 크게 흔들리는 것과 같습니다(공진). 의도치 않게 일어나는 이 증폭이 피해를 폭발적으로 키웁니다.
④ 대책 — 빨아들이거나, 거꾸로 상쇄하거나, 가둔다
사고의 원인을 알면 대책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대책 1 — 수동필터: 전용 배수구를 판다
특정 고조파만 쏙 빨아들이는 길을 따로 만들어 흘려보냅니다. 그 차수에 맞춘 코일·콘덴서를 직렬로 달아, 해당 고조파가 가장 흐르기 쉬운 샛길을 내주는 방식입니다. 구조가 단순하지만, 미리 정한 한 종류만 잡습니다.
대책 2 — 능동필터: 거꾸로 된 파형으로 지운다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소음을 측정해 정반대 소리를 내보내 지우듯, 고조파를 실시간으로 감지해 정반대 파형의 전류를 만들어 주입함으로써 상쇄합니다. 똑똑하지만 비쌉니다.
대책 3 — Δ(델타) 결선: 삼각형 회로 안에 가둔다
영상분(3차) 고조파는 세 상이 모두 동상이라는 성질이 있습니다. 변압기 권선을 삼각형(Δ)으로 이으면, 이 동상 전류는 삼각형 회로를 따라 빙글빙글 순환하는 길이 생깁니다. 바깥(전원·계통)으로 나가는 대신 삼각형 안에서만 돌다가 열로 소모되는 것이죠. 그래서 Δ결선은 영상분 고조파가 계통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아 줍니다.
핵심은 피해 종류에 따라 대책이 갈린다는 점입니다 — 일반 고조파는 필터로, 동상인 영상분은 결선으로.
정리 — 네 장면으로 다시
- 고조파는 전기를 끊어 쓰는 기기에서 전류로 태어나고 (발생),
- 흐르기 쉬운 전원 쪽으로 거슬러 흘러 전압을 일그러뜨리며 (전파),
- 변압기·중성선·공진 세 곳에서 사고를 치고 (피해),
- 필터로 빨아들이거나, 거꾸로 상쇄하거나, 결선으로 가둬서 막아냅니다 (대책).
✅ 이 글로 알게 된 것
- 고조파는 왜 생기나 — 비선형 부하가 전류를 끊어 써서, 기본파에 정수배 물결이 더해진다
- 고조파를 왜 ‘전류원’으로 보나 — 계통 사정과 무관하게 일정량을 밀어 넣기 때문
- S·P·Q·D의 관계 — S² = P² + Q² + D², 고조파는 일그러뜨리는 몫 D
- 왜 발생은 전류인데 피해는 전압인가 — Vh = Ih × Zh, 전류가 임피던스를 지나며 전압을 왜곡
- 왜 3차 고조파가 중성선에 3배로 몰리나 — 세 상이 동상(영상분)이라 상쇄되지 않고 합산
- 고조파를 어떻게 막나 — 필터(흡수·상쇄)와 Δ결선(순환 가둠)
더 깊이 — 본 줄기에서 한 발 더
여기서부터는 흐름(발생→대책)에는 직접 안 들어가지만 함께 알아두면 좋은 보충입니다.
측정 — THD와 TDD는 무엇이 다른가
고조파가 얼마나 심한지 재는 잣대가 두 개 있습니다.
- THD — 내 기기가 만드는 전류가 얼마나 지저분한지 보는 자가 진단 지표
- TDD — 여러 집이 함께 쓰는 연결 지점(PCC) 기준으로, 규제에 쓰는 공용 기준선(IEEE 519 국제 기준)
층간소음에 비유하면, 내 집에서 소음을 재보는 것(THD)과 아파트 전체에 적용되는 층간소음 규정(TDD)의 차이입니다. 진단은 THD, 규제는 TDD로 기억하면 깔끔합니다.
고조파에서 전자파까지 — 왜 한 단원일까
이 단원 제목이 “고조파 및 전자파”인 이유가 있습니다. 셋은 한 줄로 늘어선 형제가 아니라, 두 가지 잣대로 나뉩니다 — 주파수 잣대(기본 박자의 정수배냐 vs 그냥 엄청 빠르냐)와 퍼지는 방식 잣대(전선을 타느냐 vs 공간으로 날아가느냐). 저주파인 고조파는 전선을 타고만(전도성) 전해지지만, 주파수가 충분히 높아지면 파장이 짧아져 끝내 공간으로 방사되는데, 이게 우리가 아는 전자파입니다. (빛의 속도 = 주파수 × 파장, c = f·λ)
